회화의 비물질화, 순환과 질서의 가능성
문현정 (독립 큐레이터)
강원제는 회화라는 매체가 점유하던 물질적 질료와 매체적 성질을 비물질로 회귀하는 과정을 사유한다. 본래 회화에 있어 공통의 조건으로 주어지던 것은 회화적 평면과 그 위를 이루는 구조와 형식으로, 보다 실체로 존재하는 회화의 재료적이고 매체적인 물질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었던 전반의 상황은 나름의 위계를 형성하는 식으로 그 형식을 공고히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술에서 ‘물질(material)’이 아닌 ‘비물질(Immaterial)’을 실체로 바라보고자 했던 경향은 회화라는 장르를 점유하던 평면을 넘어 물성, 곧 물질에 대한 차원의 정의를 다시금 바라볼 것을 촉구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이후 전개된 개념미술(conceptual art)과 함께 예술 작품에서 비물질화의 경향은 작품에 활용되는 물질적 재료를 비물질적인 것으로 대치하거나, 아이디어(Idea)를 물질보다 우위에 두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물질에 대한 집중을 거부하거나 그 자체의 위상을 박탈하고자 했던 시도는 이를테면 루시 리파드(Lucy Rowland Lippard)와 같은 학자를 필두로 정리되었는데, 그의 저서 『여섯 해: 1966년부터 1972년까지 미적 대상의 비물질화(Six Years: The Dematerialization of the Art Object from 1966 to 1972)』(2001)에서 그는 1960-1970년대 개념미술을 설명하는 용어로 ‘비물질화(dematerialization)’를 들어 물질을 부차적이고, 일시적이고, 소박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비록 리파드가 설명하는 비물질화의 개념은 예술을 행함에 있어 사용되던 재료의 위상을 격하하기 위한 설명에 그치고 있으나, 이는 이후 매체 조건을 넘어 관념적인 것이 우위에 놓일 수 있음을 직시하도록 만들었다. 이후 예술에서 ‘물질’은 물리적으로 실체하는 재료적 성질을 넘어 에너지와 시간, 움직임의 형태까지로 그 이해의 경계를 넓혔으며, 보다 관념적 양상에서의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있었다.
강원제는 회화의 무-정형, 무-형태, 비-물질로의 이행을 지향한다. 그가 평면에 조형하는 구상과 형태는 보다 부차적인 것이 되며, 작업을 전개하는 ‘과정’ 그 자체는 일종의 스타일이자 형태적인 것(formel)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는 작가가 몰두하는 대상이 보편적으로 완성된 작품이 획득하던 조형성이나 개별적인 의미보다 수행적이고 점진적인 과정과 시간을 담보로 한 형식의 실험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본래 회화가 가지던 재료적 물질과 형태, 그 원론에 고착화된 흐름에서는 벗어나 비물질을 실험한다. 더 정확히는 비물질로 나아가는 과정에 대한 실험으로도 볼 수 있는 그의 작업에서, 우리는 그 형태나 재료와 같은 피상적 지표가 아닌 그 관념에 대한 전개 양상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전시 «위상의 변주»에 등장하는 강원제의 작품은 그가 그간 진행해 온 일련의 시리즈를 모두 포괄하며 과정으로서의 회화를 드러내고 있다. 시리즈의 전반을 펼쳐놓는 식으로 구성되는 전시는 개별의 작품이 가지는 특정 양상을 넘어 그것이 전개되었던 연속적 흐름에 대한 구조를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가 개진하는 작품의 시리즈는 곧 회화로서 수행할 수 있는 관념으로서의 비물질, 즉 자연이나 우주, 그리고 에너지와 같은 역학 차원에서의 의미론적 시도를 드러낸다. 이는 작품이 물질적인 실체가 되었을 때 마땅히 획득하는 질감, 부피, 구도, 색과 같은 요소를 오히려 배제하고, 그것이 아직 과정에 있으며 완성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직시하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는 그가 반복적으로 행하는 수행적 회화를 통해 구체화된다. 작품의 재료로 활용하는 안료, 캔버스, 틀과 같은 물질적 대상들은 곧 ‘반복되고 - 선택되고 - 해체되고 – 재정립되는’ 흐름을 따르며, 원본의 형태를 소실한 대상이 다시금 새로운 질서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복기한다. 이는 그가 매체로서 다루는 회화가 완성형의 실체에 머무는 것을 넘어 개념으로서의 비물질이라는 장소로 전환되는 총체적 과정을 내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곧 회화의 표면적 성질보다 아래에 있는 본질을 이해하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 한층 이상적 차원에서 매체에 대한 접근을 꾀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거시적인 동시에 미시적인 차원에서 그 질료적 특질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이며, 형상을 무력화함으로써 에너지나 우주와 같은 역학의 차원으로 그 의미를 이행시킴으로써 매체에 대한 재해석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강원제의 수행은 시간을 담보로 하며 점차적으로 미시 단위의 물질로 회귀하는 식의 흐름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비물질의 개념은 비가시적 접근을 통해 드러나며 무형의 에너지라는 차원으로 수렴되는 후기미술의 축을 계승한다.
그렇기에 강원제의 작업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회화의 평면에서 파악할 수 있는 도상이나 이미지, 구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품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그가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이 직조했던 회화의 평면을, 그리고 회화라는 형식을 해체해 나가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의 작품은 매번 완결의 상태가 아닌 ‘과정’의 상태에 있다. 필자는 이것에 ‘머무르다’가 아닌 ‘존재한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싶은데,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작품은 완성으로 향하는 과정의 중간에서 계속적으로 와해되며 존재하고 있는 상태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성과 파기의 과정은 다음의 완성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경로이다. 회화는 무너지고 또 다시 세워진다. 새로운 것이 탄생한 순간 그것은 다시 부서진다. 사라지고 소멸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서 또 다른 완성의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에 방법론으로 이행되는 ‘그리고 - 선택하고 - 와해하고 – 재형태화하는’ 작가의 수행적 과정은 곧 특정의 매커니즘으로 고착화되어 일련의 시스템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그것의 종착지가 비물질로의 회귀인지 혹은 또 다른 완성인지에 대한 방향은 미지수로 남겨둔 채, 작가는 일종의 사이클을 반복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순환의 구조’는 결과적으로 무(無)의 영역으로 수렴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질서를 다시 찾아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에 따라 네 가지 작업, ‹제로 페인팅(Zero painting)›(2021-), ‹부차적 결과(By product)›(2018-), ‹선택된/선택되지 않은 그림(Selected, Unselected painting)›(2019-) 그리고 ‹카오스모스(Chaosmos)›(2021-)로 이루어지는 시리즈는 전시장을 관통하는 하나의 구조를 드러낸다.
‘그리고 - 선택하고 - 와해하고 – 재형태화하는’
‘반복되고 - 선택되고 - 해체되고 – 재정립되는’
강원제는 ‹제로 페인팅›을 언제나 0의 상태에서 출발하는 회화라고 설명한다. 이미 직조된 화폭은 완성된 이미지를 뒤로하고 새로운 것으로 덧입혀지거나, 캔버스라는 질료를 탈피하여 다른 작품을 위한 재료로 환원된다. 그렇기에 작품 위에 인지 가능한 형상은 그에 상위하는 시스템으로 복기하여 다시 0의 상태를 마주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는 미완성의 순환 구조를 본격 실천하는 것으로 끊임없는 순환을 반복하는, 즉 생성과 소멸의 중간에 머무르며 어떠한 상태를 지속하는 대상으로 존재하는 회화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부차적 결과›는 기존에 그가 달성하고자 했던 반복적 그리기를 완수한 후, 남은 회화에 ‘부산물’이라는 명칭을 붙임으로써 회화라는 매체가 가지던 질료에 대한 전복을 시도한다. 기존의 캔버스에서 탈착된 상태로 건설 자재인 스캐폴딩(scaffolding)에 늘어진 회화는, 완성의 형태에서 평면이 본래 가지던 구성과 이미지를 무력화하며 오히려 그것이 축적되어 온 시간과 과정을 반추하는 상태의 설치로 존재하게 되었다.
이어지는 ‹선택된/선택되지 않은 그림›은 한 번의 완성을 마주한 회화에 대해, 작가가 다시금 ‘선택’이라는 과정을 거듭 반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그려진 평면의 일부를 선별하고 오려내어 이를 재료로 다시금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선택된’ 그림은 또 다른 회화의 평면으로, ‘선택되지 않은’ 그림은 평면을 벗어나 또 다른 형태의 설치로 변모되며 회화가 존재할 수 있는 비-결정의 양태를 드러내는 식으로 현현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된 것과 선택되지 않은 것, 이 두 가지 모두 역설적으로 다시 ‘완성’의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게끔 만드는 구조는 이후의 ‹카오스모스›로 이어지며 회화의 비물질화에 대한 의지를 내포한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카오스모스›는 회화를 끝없는 과정의 상태로 존재하게 만들기 위한 작가의 실천을 보여주고 있다. 이전의 선택되지 않은 그림(Unselected painting)은 본래의 평면과 그것이 가지던 조형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형태로 이전되어, 무한히 와해되고 해체되는 질료의 양태를 드러낸다. 기존의 작품이 가지고 있던 구조에서의 질서는 무너졌으며 보다 관념적 대상으로서의 비물질, 이를테면 역학적인 사유가 가능한 에너지의 차원으로 회귀하게 되었다. 무수히 많은 구의 형태로 다시금 조형된 회화는 무질서 사이 또 다른 질서를 획득하며 다시금 새로운 형상을 얻게 되었다. 작품은 곧 우주의 먼지와 같은 형상을 떠올리게 만들며, 반복과 순환이라는 비물질화의 과정을 원론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단초를 마주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은 완성에 도달하지 않는다. 언젠가 또 다른 형상이 되어 지속될 것을 예견하는 그의 회화에서, ‘순환’의 의지는 그것의 매체가 거듭 또 다른 질서를 획득하며 점차적인 비물질의 관념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재형태’와 ‘재정립’으로 나아가기 위해 회화는 다시금 와해되고 또 해체되어야 할 것이다. 무-정형과 무-형태는 과정을 위해 필수불가결히 실천되었어야 할 회화의 양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강원제가 비물질의 근원으로 나아가기 위해 지속하는 일련의 시스템은,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에너지와 시간, 움직임, 그리고 순환과 질서라는 관념을 시도하고자 하는 그의 욕망을 드러내며 계속해서 전개될 것이다.